"애초부터 무리한 발상"…'대한항공+아시아나' 물 건너가나 [박한신의 산업이야기]

입력 2023-08-21 07:00   수정 2023-08-21 09:46


2020년 11월 시작돼 3년 가까이 끌고 있는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이 해외 경쟁당국의 ‘불허’ 가닥으로 사실상 어려워지는 분위기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경쟁법상 규제가 깐깐한 탓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애초부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합친다는 발상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았다는 의견이다. 국내에 두 개 있는 대형항공사(Full Service Carrier·FSC)를 서로 합치면 당연히 대안 없는 독과점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아시아나항공 합병 건은 똑같이 산업은행이 주도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사례와도 대비된다. 한화의 대우조선 인수는 작년 9월 시작돼 EU를 비롯한 국내외 경쟁당국 승인을 거쳐 8개월 만인 올해 4월 완료됐다. 무엇이 달랐던 걸까. 우선 딜을 추진한 정부와 산은 회장이 다르기는 하지만, 이를 차치하면 기업결합심사의 측면에서 3가지가 달랐다는 지적이다.
○동종업계 1·2위 합병 전례 드물어
첫 번째는 동종업계 기업 간 결합, 즉 수평결합인지의 여부가 달랐다. 수평결합은 동종·유사 제품(서비스)을 생산하는 경쟁기업 간의 결합을 말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타 업종 기업의 인수 때보다 독과점(경쟁제한성) 우려가 크다.

지난 정부 때 현재 한화오션인 대우조선해양을 동종 업계 1위인 HD한국조선해양에 넘기려고 했다가 EU 경쟁당국의 최종 불허로 무산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A·B·C 기업이 33%씩 점유율을 갖고 있는 시장에서, 다른 업종 기업 D가 A를 인수하면 똑같이 3개 기업(B·C·D)이 경쟁하게 되지만, A가 B를 인수하면 67대 33의 시장이 되는 식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국내 1·2위 항공사다. 전례를 찾기 힘든 결합신청 사례에 각국 경쟁당국은 독점 이슈 해소를 위한 구조적 조치를 요구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EU의 경우 한국과 바르셀로나 노선은 두 회사를 합친 점유율이 100%다. 로마 파리 프랑크푸르트 등 주요 노선도 70% 이상이다.

인천발 뉴욕, 시카고, LA도 점유율이 100%다. EU와 미국 경쟁당국에서 ‘합병을 하려면 독과점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의미한 경쟁사를 지금 데려와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 이유다.

아시아나항공 인수의지가 매우 큰 대한항공은 미국에는 에어프레미아를, EU에는 티웨이항공을 내세웠지만 모두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미국·EU 모두 재정적으로나 규모상으로 ‘대한항공+아시아나’의 경쟁상대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에어프레미아와 티웨이항공에 여객기를 저가 임대해주고 화물기를 지원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같은 업계 타 기업을 경쟁사로 만들기 위해 지원을 마다하지 않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인천발 각 노선이 각각 개별시장
두 번째는 ‘시장획정’의 문제다. 시장획정이란 경쟁당국이 경쟁제한성을 명확하게 판단하기 위해 해당 시장의 범위를 명확히 하는 일이다. 한화오션이 속한 조선업의 경우는 전 세계적인 단일시장이다. 유럽·일본·중국의 조선소들이 같은 시장에서 함께 경쟁한다는 뜻이다.

항공업은 다르다. 다양한 노선이 각각의 시장으로 획정된다. 미국은 인천-뉴욕, 인천-샌프란시스코, 인천-시애틀 등, 유럽은 인천-파리, 인천-런던, 인천-로마 등 노선 별로 독과점 여부를 판단하는 식이다.

이 경우 일단 물리적으로 검토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고, 시장 수가 많은 만큼 자연스럽게 경쟁제한 시장도 많아진다. 여객뿐 아니라 화물시장도 별도로 존재한다.

미국이나 EU는 기업결합을 신청한 사업자가 독과점의 대안을 가져가도록 돼 있다. 노선이 많은 만큼 대안을 찾고 제시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기업이 포기를 하면 절차가 종결되긴 하지만, 아시아나 인수에 목을 매고 있는 대한항공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 대한항공은 조금씩 내용을 바꾼 신규 안을 계속 미국과 EU에 제시하면서 시간을 벌고 있다는 전언이다.

세 번째 차이는 외국 경쟁기업의 존재 여부다. 이는 시장획정의 차이와도 연결된다. 단일시장 조선업의 경우 글로벌 기업들이 한 시장에서 경쟁하지만, 수요가 그리 많지 않은 인천 노선에서는 외국 항공사들이 주요 경쟁사가 되기 어렵다.

EU의 경우 여객 손님의 80% 이상이 한국인이다. 외항사들 입장에서는 한국 노선에 취항하거나 편수를 늘려봤자 큰 이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대한항공이 데려간 게 에어프레미아와 티웨이지만 미국과 유럽 경쟁당국에 성에 차지 않는 상황이다.

○합병 성사 땐 요금인상 불 보듯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2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합병에 ‘조건부 승인’을 내줬다. 향후 10년 간 경쟁제한 우려가 큰 국제선 26개 노선과 국내선 14개 노선에 대해 운수권 이전 등 구조적 조치를 이행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인 것이다.

이에 대해 한 공정거래 전문 변호사는 “정부 주도 자국기업 구조조정에 발을 맞추는 성향인 한국 공정위가 이런 조건을 내건 것은 사실상 아시아나 딜을 승인하기 어려웠다는 얘기”라고 돌아봤다.

이어 “경쟁법상 규제 측면에서 두 회사의 합병은 조금만 생각해도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더 큰 문제는 두 회사의 합병이 실제로 이뤄질 경우 항공요금 인상은 불보듯 뻔하다는 점이다. 물론 한국 공정위가 독점 노선에 대한 운임인상제한 등을 조건으로 내걸기는 했다. 하지만 항공권 요금의 경우 항공사의 티켓 가격인상을 모니터링하고 제한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한 공정거래 전문가는 “항공권은 언제 구매하느냐, 어떻게 구매하느냐, 어디에서 구매하느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인데다 같은 이코노미 좌석 중에서도 등급이 다양하다”며 “너무 많은 가격 종류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 가격인상을 제한하거나 이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업계 1, 2위 회사의 합병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소비자라는 얘기다.

아직 미국과 EU 경쟁당국의 판단이 나오지 않았지만, 결국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합병은 옛 대우조선해양과 같은 흐름이 될 거란 전망이 많다. 동종업계 1위인 한국조선해양과 결합을 시도했다가 해외 경쟁당국 불허로 제3자 매각(한화)으로 선회했던 수순이다. 코로나19가 끝나고 항공산업의 업황이 다소 나아지면서 제3의 매수자를 찾기 한결 수월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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